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진 정책 (문단 편집) === [[후백제]]의 북진 정책 === * [[견훤]]의 [[공산 전투]], [[고창 전투]] 후백제의 왕 [[견훤]]은 927년 신라의 수도 [[서라벌]]을 함락시키고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[[경애왕]]을 자살시키는 방법으로 시해하고 [[경순왕]]을 즉위시키면서 신라를 속국화하고 뒤이어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[[태조(고려)|왕건]]의 고려군을 [[공산 전투]]에서 크게 무찌르며 영토를 크게 넓혔다. 그리고 훗날 930년 [[고창 전투]]에서 삼한의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신라 호족군의 지원을 받아 고창에서 고려군과 맞붙었으나 고려의 장수 [[유금필]]의 맹활약과 경애왕의 시해사건으로 견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던 신라 호족들의 통수로 후백제군이 8천명이나 전사하며 대패했고 후백제는 상주 일대 상실 및 신라 호족들이 대거 고려에 투항하는 등 큰 손실을 입게 되어 삼한의 패권을 고려에게 넘겨준다. * [[견신검]]의 [[일리천 전투]] 일리천 전투는 [[후삼국시대]] 최후의 전투이고 고려의 후백제 정벌로만 알려져 있지만 후백제의 고려 남정 방어 및 후백제의 북벌이기도 하다. 935년 3월, 정변을 일으켜 [[견훤]]을 [[금산사]]에 가두고 후백제의 새로운 왕이 된 [[견신검]]은 936년 9월 총동원령을 선포하여 일리천에서 고려와 맞붙었으나 935년 6월 금산사에 탈출하여 고려에 망명하고 일리천 전투에 고려군에 합세해 출전한 [[견훤]]의 등장으로 후백제군은 사기를 잃고 고려군은 후백제군을 크게 무찌르며 승리를 거두었다. [[견신검]]은 패잔병을 이끌고 수도 완산주로 퇴각하다가 황산에서 결국 고려군에게 따라잡히고 포위당해 항복한다. 이후 고려의 왕 [[태조(고려)|왕건]]은 후백제의 수도 완산주에 입성하고 후백제의 항복 및 삼한의 통일을 선포하며 892년부터 45년동안 이어져 온 전란기인 [[후삼국시대]]는 고려의 통일로 마무리가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